2023년 5월 28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예배
마가복음 12:28-34
아가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중요한 신학적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세금과 관련된 질문을 하였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는 메시지를 통하여 비록 데네리온에는 황제의 형상을 있지만, 황제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은 영적 예배자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두개인들과의 부활의 논쟁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핵심적인 내용은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관한 구약 성경의 내용도(사 26:19; 겔 37:1-14),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신명기 25장 5-10절의 말씀을 적용해서 일곱 형제가 큰 형수와 계대 결혼을 했다고 하면, 죽음 이후 부활의 상태에서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가하는 질문에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부활의 삶이란 더 이상 이 땅에서의 삶의 연장선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므로 이 땅에서의 결혼의 제도가 부활의 상태에서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경험하는 자들은 천사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출애굽기 3장 6절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는 의미를 통하여 죽음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들의 죽음이 우리들의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과적으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죄 용서함과 의로움을 얻었다고 하면,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12장 28-34절의 내용은 서기관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질문하는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마가복음에서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대적자로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막 2:6-7, 16; 3:22; 7:1,5; 8:31; 9:14; 10:33; 11:18,27). 마가복음에서 처음 등장하는 서기관들의 모습은 마가복음 2장 1-12절에 기록되어져 있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에서 시작이 되어집니다. 네 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내렸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다고 언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다.
(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이로 인하여 서기관들과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세관 레위(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에서도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있는 자들이 바리새파 서기관들이고(막 2:16), 바알세불의 논쟁(3:33), 손을 씻는 정결법의 논쟁(막 7:1-23), 예수님께서 다볼산에서 변형되신 이후에 귀신 들린 어린 아이를 고쳐 주시는 논쟁(막 9:14-29),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 또한 서기관들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막 11:18).
그러므로 우리들은 본문 28절에서 서기관이 예수님께 첫 번째 계명에 관하여 질문하는 의도가 부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서기관이 질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동일한 본문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 22장 35절의 말씀을 보면 마태는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험하다’(πειράζω)는 헬라어 동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질문을 통하여 함정에 빠지게 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 마가가 기록하고 있는 서기관의 질문의 태도와 예수님의 답변에 관한 반응을 살펴보면 이와 반대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 서기관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 그리고 사두개인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예수님의 대답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마가는 서기관이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 마가복음 12장 32-33절에서 서기관은 예수님의 대답에 적극적인 찬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도 34절에서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라고 표현하시면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 그리고 사두개인들을 대하시는 태도와 다르게 반응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대화는 논란의 대화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서기관의 긍정적인 반응을 통하여 선포적인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기관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답변을 하셨습니까?
(막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첫 번째 가르침은 신명기 6장 4-5절의 말씀을 기초하고 있습니다.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쉐마(Shema)로 불리는 신명기 6장의 말씀은 출애굽을 경험한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약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사랑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화답하는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장 10절에 어떻게 말씀합니까?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러면 성도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세상을 사랑하심을 깨달은 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은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삶 곧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예수님께서 두번째로 말씀하시는 내용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번째 내용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막 12:31)
이 말씀은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레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은 가족 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스트로게’(στοργή)나, 친구 간의 사랑의 표현하는 ‘필리아’(φιλία)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아가페’(ἀγάπη)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자기 사랑의 확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 18절에서 그 방법을 제시합니다.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한 서기관의 대답에서 서기관은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막 12: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결과적으로 서기관의 입술을 통하여 고백 되어지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이 모든 번제와 희생 제물보다 더 낫다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초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막 12: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서기관이 이렇게 예수님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서기관이 가지고 있는 명성이 아니라, 서기관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들에게도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질문하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우리의 구원자 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들의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