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6일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7:1-13
제목: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잃어버리고 살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다를 걸으시는 사건 이후에 게네사렛 땅에 도착하여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침상째로 예수님께 나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고도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이 널이 퍼진 것을 우리들은 마가복음 6:56절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데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 자락에 손만 대고도 낳음을 받는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 7장 1-23절의 내용은 장로들의 전통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무엇이 부정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는데 우리들은 두 번의 시간으로 이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의 율법이 성문화 되어진 미쉬나(Mishnah)의 내용 중에서 6번째 장에 해당이 되어지는 정결과 관련된 법 중에서 음식을 먹기 이전에 “손 씻기법”과 “그릇을 씻는 법”이 본문의 배경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본문 2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막 7: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비난과 함께 예수님과의 장로들의 전통에 관한 논쟁이 본문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구약적 배경에서 정결(טָהור)과 부정(טָמֵא)에 관한 개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결한 것이란 사물과 사람의 정상적인 상태이지 거룩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정의 반대는 정결한 것이 아니라 거룩(קֹ֫דֶשׁ)입니다. 정결한 것은 거룩함으로 승화될 수 있고, 이와 반대로 부정한 것으로 더럽혀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사물에 접촉하는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레위기 11장 39-40절의 원칙입니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오늘 본문 말씀을 이해해 보겠습니다.
미쉬나의 여섯 번째 정결법인 토호롯(Tohorah)중에서 “손씻기법”이 있는데 “손씻기법”은 21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14번째 항목을 보면, “먼저 손을 씻지 않고서는 먹는 것이 금지된다”는 항목이 있습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여행 중 진행 방향이 6.5km, 지나온 방향이 1.5km이내에서 물을 구할 수 없으면 천으로 손을 싸거나 장갑을 끼고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문 4절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라는 표현은 목욕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시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만나면서 부정한 사람과의 접촉을 통하여 자신이 부정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결에 관한 법은 그릇을 씻는 법까지 확장되어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릇은 반드시 정한 것이어야 합니다. (막 7:4b)
유대인들이 그릇에 신경을 쓰는 이유를 살펴보면 출애굽기 23장 19절의 말씀 때문입니다.
(출 23:19) …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그리고 이 내용은 고기 제품과 우유 제품을 함께 먹지 말라는 내용으로 해석이 되면서 그릇과 관련해서 적용이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생명을 주는 젖과 생명이 없는 고기를 함께 섞을 수 없다는 전제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본문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막 7: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을 보면, 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 관한 이해가 장로들의 전통과 전혀 다른 입장에서 제시하고 계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입장에서 보면, 음식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how to eat)에 집중하고 있다고 하면, 예수님의 해석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음식을 먹기 이전의 정결에 관한 장로들의 법은 레위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정결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서 형식화 되어졌고, 이로 인하여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고 예수님께서 지적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이사야 29:1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가복음 7:6-7절에서 지적하고 계십니다.
(막 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먼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동을 “외식하는 자” (ὑποκριτῶν)로 언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고 계신 외식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두 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6b)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들입니다.
둘째,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 삼아 가르치면서 하나님을 헛되이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7)
곧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면서 율법의 형식을 갖추었지만, 이러한 행동이 헛되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동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내용이 본문 8절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막 7: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명이 어떠한 계명을 언급하는지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 가운데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부정한 것과 관련된 거룩의 본질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잘못은 거룩의 본질은 버리고 미쉬나의 토호롯에 기록되어진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는 형식적인 법만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이 거룩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레 11:44)
그러므로 구속함으로 은혜을 받은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거룩이 형식에 빠지면 거룩의 본질을 상실하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거룩한 삶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러한 삶은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첫째,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셋째,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거룩의 형식에 빠져 거룩의 본질을 상실한 예로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고르반(κορβᾶν: Corban)입니다.
고르반이라는 구약적인 의미는 예물/헌물(קָרְבָּן)입니다. 이 단어는 레위기 1:2절에 처음 등장합니다.
(레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예물/헌물이라는 의미에서 고르반이란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과 관련하여서 고르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막 7:10-11)
(막 7: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이 의미가 무엇입니까?
한 농부가 무화과 과수원이 있는데, 무화과의 열매의 소득 일부를 부모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깝게 생각해서 무화과 과수원을 하나님께 바친 “고르반”이라고 선포하면 하나님의 예물/헌물이 되어서 더 이상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Mishnah, Nedarim 1:2-4; 3:11; 5:6; 9:1,7)
그런데 이러한 고르반 제도의 문제점은 강제성이 없어서 일부만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고 자신들의 용도로 사용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정한 장로들의 전통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행동이 되었습니다.
(막 7: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우리들은 교회 안에서 거룩의 본질의 놓치고 형식화 되어진 부분이 없습니까?
교회의 본질은 예배와 영혼 구원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영혼 구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호세아 6장 3절의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절 말씀을 보면,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우리들은 예배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서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찬송하고 말씀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아는 것과 믿는 것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때마다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복음을 증거하는 쉴만한 물가 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