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6일 쉴만한 물가 교회 주일 예배
시편 103:1-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03편은 다윗의 찬양 시이며 동시에 다윗의 신앙 고백 시입니다. 특별히 시편 103편을 읽는 우리가 다윗의 신앙 고백에 집중해서 생각해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시편 103편의 다윗의 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게 되어지는데,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신 분이십니다(시 103:8).
시편 103편 1-2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은 다윗이 하나님을 송축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시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시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다윗은 시편 103편 1-2절의 말씀에서 ‘송축하다’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송축하다’라고 번역이 되어져 히브리어 동사(בָּרַךְ)의 의미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송축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의 본래적인 의미는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에서 시작이 되어진 단어입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에서 추론해 볼 수 있듯이 ‘송축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전쟁에서 적군에게 ‘항복’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고 본문 1-2절의 말씀에서 세 번 강조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송축해야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다윗이 왜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해야 합니까?
우리들은 본문 2절 하반절의 말씀을 통하여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다윗이 하나님께 은택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본문 2절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는 모습 가운데에서 우리들이 다윗이 하나님의 ‘은택’을 입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은택(גְּמוּל)이라고 번역이 되어진 히브리어 명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조금 쉽게 설명해 보면, 어떠한 행동에 관하여 결과물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에서 사랑과 용서가 강조되어진다고 하면, ‘은택’이라고 번역이 되어진 히브리어 명사(גְּמוּל)는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이 되어질 때에 우리들은 ‘징벌’의 의미로 번역을 합니다.
(사 3: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이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이 되어질 때에는 ‘혜택’의 의미로 은혜가 강조되어진 결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죄악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은택을 받았기에 자신의 입술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을 송축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 103: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시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시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다윗이 하나님께 은택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악을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25편 11절의 말씀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25: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사유하심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시 130:4)을 알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을 송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시편 3편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본 것처럼, 다윗의 삶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기 이전의 다윗과 이후의 다윗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비록 사울 왕에 의해서 쫓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방패가 되어 주셨습니다(시 3:3). 그러나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사건으로 인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겼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다윗의 집에 재앙이 다가옵니다.
다윗의 첫째 아들 암논이 셋째 아들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범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 일로 인하여 압살롬은 자신의 형 암논을 살해하게 됩니다(삼하 13:20-34). 또한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서 다윗을 반격하는 상황이 버러졌고(삼하 15:10), 다윗은 자신의 아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압살롬의 죽음까기 경험하였습니다.
다윗은 한 순간의 죄악으로 하나님 앞에서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였고 죄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본문 3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죄는 질병과 연결이 되어져 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심같이 질병을 고쳐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다윗의 삶 가운데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죄악의 고통으로 부르짖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용서해 주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다윗의 삶을 고쳐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4절의 말씀을 보면, 다윗은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파멸 곧 멸망의 구덩이에서 속량해 주셨다고 하면, 이러한 복은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과 긍휼하심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파멸’(שַׁחַת)이라고 번역이 되어진 멸망의 구덩이가 어떠한 장소입니까?
바로 무덤의 구덩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무덤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셔서 속량(גָּאַל)해 주셨다는 의미는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가 언약적인 관계로 연결이 되어져 있어서 인자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삼하 7:9)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임마누엘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으로 ‘헤세드’(חֶ֫סֶד) 곧 인자와 긍휼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은 다윗이 기대하지 않고 있는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았다고 하면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범죄자로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죄는 다윗을 멸망의 구덩이로 빠뜨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에 다윗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가운데에서 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의 삶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평생 좋은 것으로 넉넉히 채워 주시는 분이시고, 다윗을 독수리처럼 늘 새롭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시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모습을 이사야서 40장 31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는 이유를 오늘 우리들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악을 사해 주시고 자신을 고쳐 주셨을 때에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으로써 인자와 긍휼을 깨닫고 독수리처럼 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부활의 능력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송축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번 한 주간에도 독수리처럼 새 힘을 얻어 살아가시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