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곡입니까? 쭉정이입니까?
이사야 21:10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21장 1-9절에서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묵시를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에 파수꾼을 세워서 바벨론의 멸망의 소식을 듣는 장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본문 10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의 멸망의 소식을 듣고 난 후에 유다를 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 21:10) 내가 짓밟은 너여, 내가 타작한 너여,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 들은 대로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남 유다의 백성들은 타작 마당의 곡식과도 같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 유다를 타작 마당에서 짓밟은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타작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본질적인 목적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결과적으로 타작 마당에서의 키질은 모든 겨와 쭉정이는 바람에 날려 버리고 알곡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로 사용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10장 5절에서 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찾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는 남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 유다의 백성들은 앗수르의 배신 후에 애굽을 의지하려고 했고, 애굽의 멸망 후에 바벨론을 의지하려고 했는데 바벨론도 세상의 다른 민족들처럼 남 유다를 구원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전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13장 1-3절의 말씀을 보면 바알로 말미암아 범죄한 에브라임에 관한 심판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3절의 말씀을 보면, 타작 마당에서 광풍이 불었을 때에 쭉정이는 날아가고, 그들은 굴뚝에서 나는 연기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 13:3)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남 유다에게 말씀하시는 핵심적인 내용이 알곡을 찾고 계신 것이라면 타작 마당을 슬픔의 장소이면서도 기쁨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고 인생을 의지하면서 우상을 섬기고 있는 자들에게는 타작 마당에서 겨와 쭉정이로 구분이 되는 작업이기에 탄식과 슬픔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온다는 이사야서 10장 22절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알곡으로 살아남은 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사 10: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세례 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할 때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마태복음 3장 8절에 언급하면서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고 3장 10절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3장 12절에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우리가 이 말씀을 읽고 어려워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역할 가운데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은 단지 남 유다의 백성들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들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들은 마지막의 날에 알곡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쭉정이가 될 것입니까?
우리들의 믿음과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씀에 순종하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