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사야 23:15-18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서 23장 1-14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두로의 멸망에 관한 소식이 페니키아 지역 뿐만 아니라, 애굽과 스페인의 한 도시로 추정되는 다시스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들은 두로의 심판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교만을 어떻게 다루시는 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5-18절의 말씀을 보면 두로의 회복의 메시지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창녀’의 이미지는 구약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먼저 본문 15절을 읽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 23:15)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먼저 우리들은 숫자 70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숫자 70은 완전성을 표현하는 수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의 완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70년 동안 바벨론에 종살이 한 것처럼, 두로가 70년 동안 두로의 해상 도시의 본래적인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주전 701년에 산헤립이 두로를 침략해서 앗수르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630년 까지의 시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의견입니다.
본문 15절에서 70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기생의 노래에 나오는 일들이 두로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하는 기생의 노래에 나오는 일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의 실마리를 풀어 가기를 원합니다.
신명기 23장 18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음란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적 타락으로 벌어 들인 돈을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사야 선지자는 왜 두로를 기생의 이미지로 적용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두로의 모든 백성들이 성을 파는 직업에 종사했다는 것이 아니라, 두로가 이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들도 했던 것처럼(암 1:9) 기생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생의 이미지는 이익을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하는 두로의 모습을 비유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사 23:16)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사 23:17) 칠십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사 23:18)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
결과적으로 두로가 70년의 시간을 통하여 교만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난 후에 두로가 무역을 통하여 얻은 수고의 열매는 여호와의 백성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사야서 23장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페니키아 지역의 대표적인 도시 두로의 운명을 70년 동안 교만의 대가를 치루게 하실 수 있으신 데, 왜 하나님보다 두로를 두려워하거나 신뢰하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두로의 사건은 남 유다에게 열방을 의지하려고 가지말라. 열방이 심판을 받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직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 만을 의지하고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