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와 정의가 이루어지는 통치
이사야 32:1-2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 선지자는 24-27장에서 앞으로 도래할 종말에 관하여 선포하였습니다. 28-29장의 말씀에서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죄, 특별히 지도자들이 범하고 있는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30-31장의 말씀을 통해서는 남 유다가 애굽과 맹약을 맺으려고 하는 모습을 책망하였습니다.
이사야서 28-31장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지도자들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선택하지 않고 교만하여서 술에 취해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리더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 백성들은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32-33장에서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는 의의 왕이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 유다의 백성들은 잘못된 지도자들을 바라보지 말고 의의 왕을 바라 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공의와 정의의 통치의 통치는 누구를 통하여 이루어집니까?
학자들은 이러한 통치가 메시아의 통치인지 왕의 통치인지를 논쟁합니다. 만일 왕의 통치라고 하면 히스기야의 통치라고 주장을 합니다(Seitz). 그러나 인간 지도자들의 통치의 실패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통치는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아의 공의와 정의의 통치는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 32: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첫번째로, 메시아의 통치는 백성들이 광풍을 피하는 피난처가 될 것입니다.
메시아의 통치가 백성들에게 피난처가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이 광풍 가운데에 있다고 전재하고 있습니다. 광풍이라는 것이 인생의 어려움이라고 하면, 피난처는 안식을 허락하는 장소이고, 독수리의 날개 안과 같은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도자의 역할을 잘못하고 있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두번째로, 메시아의 통치는 폭우를 가리는 장소와 같게 될 것입니다.
큰 배가 폭우를 피해서 안전한 장소를 찾을 수 있다고 하면, 피난처는 폭우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방파제의 역할을 하여서 배가 파괴되는 것을 막아 줍니다. 그리고 배 안에 있는 선원들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메시아의 통치는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을 것입니다.
지금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광야의 메마른 땅에서 물을 찾아 해매는 자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자들은 물을 찾지 못하고 백성들은 지속적으로 생수를 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통치를 통하여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네번째로, 메시아의 통치는 백성들에게 한낮 더위를 피해 큰 바위 그늘처럼 될 것입니다.
광야의 길에서 큰 바위를 만나는 것은 뙤약볕을 피해 그늘에서 쉼을 얻을 수 있는 장소입니다.
메시아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삶의 생기를 잃어버린 혹독한 인생의 여정에서 그늘의 역할이 되어서 쉼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광풍으로 인하여 힘든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광야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참된 평안과 쉼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터키 땅과 시리아 땅에 이러한 복이 함께 하기를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