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희망을 잃어버리지 말라
이사야 22:12-14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준비할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만일 우리가 인간의 생각으로 무엇인가를 준비해 간다고 하면 그 결과 또한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난 시간에 남 유다가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성벽을 재건하고 저수지를 만들면서 인간적인 방법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모습은 남 유다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22:11).
결과적으로 남 유다의 모습은 인생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남 유다의 백성들이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남 유다의 백성들에 요구하고 계신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사 22:12)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먼저 12절에 “명령하사”라고 기록되어져 있는 표현은 히브리어 동사의 표현은 ‘부르다’ ‘소환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 유다의 백성들을 어떠한 자리에 소환하고 계십니까?
첫째 통곡과 애곡의 자리이며, 둘째 머리를 미는 자리이고, 셋째 굵은 상복을 입는 자리입니다.
이러한 장소가 어디입니까?
바로 회개의 자리입니다.
지금 남 유다의 모습이 회개의 장소라고 하면 슬픔에 가득 찬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남 유다의 백성을 통곡과 애곡의 자리에 부르셨다고 하면 바로 올바른 금식과 회개의 기도를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느헤미야 1장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며 능욕을 당한 모습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느 1:2-3).
이러한 말을 듣고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느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지금 하나님께서 남 유다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모습이 이러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본문 13절의 말씀을 보면 남 유다 백성들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 22: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회개의 장소가 되어야 할 남 유다가 잔칫집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남 유다의 잔칫집의 모습을 보면, 내일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하고 오늘의 즐거움을 선택한 모습입니다.
전쟁에서 포위된 남 유다의 백성들이 음식을 아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면 남 유다가 죽음 이후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 저편에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있다고 하면, 남 유다는 이렇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 22: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 14절에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회개하지 않는 백성들은 죄 용서함과 구원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요나서에서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죄의 고백과 회개가 있는 곳에 죄 용서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내일의 희망 곧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거룩한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성도는 오늘의 쾌락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내일의 성화를 위한 삶을 살아가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