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목적에서 벗어나자
이사야 22:15-19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사야서 13장에서 시작된 열방들을 향한 심판 가운데에서 남 유다가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남 유다가 하나님 보시기에 열방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남 유다의 심판 가운데에서 왕궁 맡은 자 셉나를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각 나라의 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죄도 분명하게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예언은 이사야 36:3절의 말씀을 통하여 실현 되어졌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엘리아김이 셉나의 자리 ‘왕궁 맡은 자’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 36:3)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아가니라
그러면 셉나는 어떠한 인물이기에 이사야 선지자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지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셉나가 왜 강등되었고 엘리아김이 왜 진급되었는지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셉나가 친 이집트 파였고, 엘리야김은 이러한 셉나를 경계한 인물이라고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의견을 제시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15-1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사 22:15)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16)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본문 16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왕궁이 셉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장소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셉나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히브리어의 언어 유희를 통하여 사용되고 있는데, 16절에서 “여기”라는 단어가 세 번 사용이 되어지고 있고, “너를/자기를 위하여”라는 단어가 3번 사용을 하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셉나가 행동하고 있는 구체적인 일들은 무엇입니까?
바로 묘실을 만드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굴을 파서 묘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족이 하나의 묘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무덤의 크기와 규모에 따라서 신분과 지위가 어떠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셉나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묘실을 크게 만드는 모습은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지 백성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이사야서 36장 3절에서 셉나의 아버지가 기록되어 있지 않는 모습을 보면, 아마도 셉나는 자신의 집안에서 출세한 인물일 가능성 높습니다.
그런데 오직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는 셉나는 백성과 하나님을 위한 선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셉나를 어떻게 다루십니까?
(사 22:18)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본문 18절 말씀에서 “광막한 곳”은 “넓고 광활한 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셉나를 공같이 둥글게 말아서 넓고 광활한 땅에 던져 버리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셉나가 “여기”에 있으려고 했는데, “거기”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셉나의 죽음이 실현 될 것이라는 징조로 19절 말씀에서는 짧은 시간안에 이루어질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사 22:19)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리니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36:3절의 말씀을 통하여 실현 되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국가나 사회나 교회의 어느 자리도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자리입니다. 만일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섬김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겸손하게 백성을 섬기는 자리에서 권력을 누리려고 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함꼐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