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
이사야 45:9-13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해가 지는 곳까지 그 어느 곳 하나도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 역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곳을 통치하고 계시고 역사의 주체라는 사실입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페르시아의 황제 고레스를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예언의 말씀은 실현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믿기 어려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이신 가를 선포하십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오늘 말씀이 주는 의미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9절과 10절의 말씀에서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먼저 9절의 말씀에서 토기장이와 질그릇의 비유입니다.
(사 45: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토기장이의 비유의 논리는 매우 간단 명료합니다. 질그릇 조각 중에서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조각이 토기장이에게 “왜 이렇게 나를 만들었습니까?”라고 대꾸하는 것이나 토기장이에게 질그릇을 만드는 기술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어떠한 모양을 만들거나, 무엇을 만들거나 그 권한은 토기장이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10절의 말씀은 부모와 아들의 비유입니다.
(사 45: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어느 시대이든 자식이 부모에게 “나를 자식이라고 낳았습니까?”라고 빈정되거나 “나를 낳으면서 무슨 고생을 했다고 그럽니까?”라고 어머님 앞에서 빈정대는 모습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하고 우상을 섬기는 모습은 마치 이러한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창조하시고, 온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강조하십니다.
(사 45: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사 45: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피조물인 인간이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진노만 살 뿐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함입니다.
(사 45:13)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의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그의 길을 평탄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고레스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현하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는 역할이 고레스의 역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셔야 할 일들을 이루어가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