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회복입니다 (사 1:24-26)
2022년 5월 19일 새벽 설교
쉴만한 물가 교회
김윤규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적적, 윤리적 타락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돈을 위해서 정의와 공의를 버렸고 정직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죄의 심판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죄의 결과가 주는 일시적인 행복에 자신의 영혼을 죄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의 결과가 심판이라는 사실을 24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1: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판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고, 그들을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사야 1:4절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슬픔은 우리들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4절에서 사용한 ‘슬프다’는 히브리어 감탄사 ‘호이’(הוֹי)를 24절에서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는 용어도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백성(1:2), 내 자식(1:3)”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만홀히 여겼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의 단어와 함께 언약의 단어로 함께 부르셨습니다. (범죄한 나라, 허물진 백성, 행악의 종자, 행위가 부패한 자식) (1:4)
그런데 본문 2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는 용어는 “내 대적, 내 원수”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배반하여서 도덕적, 윤리적 타락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대적, 원수로 생각하시고, 그들에게 갚아주고, 보복하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의 심판과 다릅니다.
세상에서 원수를 향한 심판은 전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쟁의 모습에서 적대국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심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의 심판과 다릅니다.
먼저, 25절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청결을 위한 심판입니다.
(사 1:25)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의 삶 가운데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정의와 공의가 사라진 상태에서 정직의 부재가 가져오는 결과를 22-23절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25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은 풀무불에서 불순물을 제거하여서 은의 순도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삶은 돈을 위해서 정직을 버린 삶이 아니라, 공의와 정의와 정직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심판은 회복을 위한 심판입니다.
(사 1:26)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하시는 방법은 지도자들이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죄의 불순물이 제거된 상태에서 정의와 공의로 재판하는 재판관과, 나라의 일에서 정직하게 행동하는 지도자들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심판의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두 단계를 거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을 의의 성읍이요, 신실한 고을로 만드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심판의 목적은 청결과 회복입니다.
함께 기도 드립니다.